지난주 토요일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포천의 국망봉 등산에 나섰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평소보다는 좀 늦게 친구랑 후배들 만나서
설렁탕집에서 아침을 먹고 국망봉으로 출발... 요즘 자주 등산하는 4명이서...
궁예가 왕건에게 패해서 도망다니다가 국망봉 정상에 올라서 자신이 세운 수도였던
철원쪽을 바라보며... 전처였던 왕비의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해서
이름을 國望峰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들어가는 입구쪽의 안내판이 조그맣고 잘 눈에 띄이지 않는다.
휴양림도 있다고는 하는데... 다른 곳 처럼 숲속의 집이나 방갈로가 없고 다만 숲만 가꾸는 듯 하다.
눈쌓인 길을 조심스레 들어가니 생수공장 옆길에 휴양림 입구가 나타난다.
입구는 문을 잠궈놓아서 차는 못들어가고... 그래도 입장료는 받는다.
순박하게 생기신 아저씨가 입구 초소옆에서 불을 피워놓고 있다.
산은 멀리서 구름에 쌓여서 봉우리가 잘 보이지는 않는데 꽤 높아 보인다.
주변의 봉우리들도 다 높게 늘어서 있다.
기온은 낮았지만 바람이 불지는 않아서 산 아래는 그다지 추운줄을 모르겠다.
저수지 아래쪽으로 등산로 입구 표시가 있다. 국망봉으로 올라가서 신로봉쪽으로 내려올
계획이었는데... 정상에서 신로봉쪽은 눈이 수북히 쌓여있고 사람다닌 흔적이 없어서
길을 찾지 못하고 러셀을 해야할 판이라서 포기하고 원점회귀로 돌아오게 되었다.
눈쌓인 전나무들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는 널찍한 임도를 따라 1킬로 남짓 걸어들어가니
산기슭에 정상쪽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철제계단으로 만든 등산 진입로는 조악하고 오래되어 보여서 실망스럽다.
임도는 경사가 완만했으나 철제계단부터는 급격한 급경사...
나무 숲 사이로 주변의 높다란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눈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얼어붙어 있어서 다행히 신발에 달라붙지는 않는다.
다만 등산로의 눈이 미끄럽고 경사가 다소 있어서 오르는데 힘이 든다.
우리 외에도 의외로 등산하는 분들이 꽤 있다.
산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듯 하다.
경사진 길을 한참을 올라가니 대피소가 나타난다. 하지만 대피소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차있다. 우리보다 먼저 올라간 분들이 꽤나 많나보다.
좁은 대피소안에 문을 다 닫아놓고 음식을 해먹으니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와
수증기가 꽉차있고... 무엇보다 온갖 냄새가 섞여서 숨을 쉴수가 없다.
결국은 그 역겨운 냄새때문에 얼른 밖으로 나와야 했다.
날씨는 춥고 배도 고파서 점심을 먹고 올라갈까 했으나 상황이 이러하니 일단 정상이
가까우니까 정상부터 갔다오자고 해서 다시 출발을 했다.
대피소 이후로는 경사가 더 급해지고 바람까지 불기 시작한다. 사방은 눈안개인지 눈구름인지
가득해서 전망이 가로막혀 있고 등산로가 미끄럽고 눈이 수북히 쌓여 있어서
아이젠 찬 등산화가 자꾸만 미끄러지고 올라가기가 힘들어진다.
밧줄을 부여잡고 억지로 한발한발... 찬 공기와 바람에 얼굴을 마스크로 막아놓으니 숨은 더 쉬기 힘들고
다리는 미끄러지고... 이렇게 곤욕스러울때가 없었던 것 같다.
앞에 올라가는 사람도 발걸음이 더뎌지고 미끄러지고... 좁은 등산로여서 옆으로 우회할수도 없고...
다들 힘들게 겨우겨우 정상에 올라가니 기진맥진... 가뜩이나 배고픈 상황에서 탈진할 지경이다.
정상에서도 전망없기는 마찬가지.... 찬 바람과 냉기에 얼른 사진만 찍고 하산...
신로봉쪽은 눈이 수북하고 사람다닌 흔적이 없어서 선뜻 발을 떼지를 못했다.
멀리 보이는 밧줄 매어는 길쪽으로 한번 가볼려고 했으나 푹푹 허리까지 빠지는 눈때문에
더이상 가다가는 위험해질것 같아서 포기하고 올라온 길로 내려가기로 결정...
내려가는 길은 발을 디딘다기 보다는 그냥 미끄럼을 타는 모양이었다.
미끄러운 길에 발을 디딜수 없이 그냥 그대로 미끄러진다.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어린아이들 미끄럼 타듯이 미끄러져 내려가고...
그렇게 내려가니 시간은 금방... 대피소 안에는 냄새때문에 포기하고 대피소 옆 바람 불지 않는 쪽에다가
채비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먹는 동안에는 땀이 식고 움직임이 없으니 다시 추워진다.
발도 시리고 손도 시리고... 시간은 오후인데도 산위에는 기온이 더 떨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점심을 끝내고 그대로 초스피드로 하산길...
1168미터 국망봉과 왕복 7~8킬로미터의 등산로를 금새 내려와 버렸다.
산아래 내려오니 날씨가 많이 풀린 느낌이 든다...
마지막 정상을 앞두고 힘을 다 써고 용을 써서 그런지 산아래 내려오니 맥이 탁 풀리고
급격히 피곤하다...
뒷풀이 없이 그대로 서울로 돌아왔다.
국망봉 정상부근은 눈이 없더라도 올라가기 상당히 힘들것 같다.
여건이 된다면 나무 계단을 설치해 준다면 좋을 듯 싶다.
경사진 길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계속 길이 훼손돼고 환경이 파괴될 것 같다.
그리고
산 여기저기에 예전 냉전시대의 유물인 방공호가 유달리 많이 만들어져 있다.
심지어 정상에도 깊숙한 터널식으로 콘크리트 요새를 만들어 놓았다.
시급히 복원을 해야하지 않나 싶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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