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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국토 나의 산하 / 사라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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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은비/신뽀리/가을비 2008. 7. 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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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언어’로 채운 배낭을 풀다
청계천에서 백두산·지리산까지
작가 시선으로 누빈 국토 대장정
역사와 삶의 풍경들 3권에 담아
한겨레 최재봉 기자
» 사진작가 황헌만씨가 카메라에 담은 국토의 풍경들. 왼쪽부터 왕시리봉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공주 금강 청벽(위), 비무장지대의 철책(아래)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 2, 3〉
박태순 지음·황헌만 사진/한길사·각권 1만8000원


»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 2, 3〉
길 떠나는 무렵이다. 일터와 배움터에서 놓여난 사람들이 저마다 행장을 꾸려 어디론가 가고 또 간다. 살림은 폭폭하고 시국은 어수선해도 떠나는 이들의 표정만은 밝고 환하다. 그러나, 물어보자. 왜 떠나는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려 함인가. 수도자의 구도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떠남에는 지향과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길이 있으니까 나선다’는 식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소설가 박태순(66)씨의 세 권짜리 두툼한 책 <나의 국토 나의 산하>를 올여름 길 떠나는 이들에게 권하고자 한다. 권별로 ‘나의 국토인문지리지’ ‘시인의 마음으로’ ‘인간의 길 시대의 풍경’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여행을 떠나되 먼저 국토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떠나자고 제안한다. “국토를 알면 알수록 내 인생이 충실해지고 내 생활이 넓어진다”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39개의 꼭지에 나뉘어 실린 그의 국토 편력은 뜻밖에도 서울 청계천에서 시작한다. 지은이는 복개와 복원을 거듭한 청계천에서 도시화와 역도시화의 상징적인 흐름을 본다. 속도와 효율을 위해 개천을 덮고 고가도로를 건설했던 것이 도시화의 전형이었다면, 고가도로를 뜯어내고 죽었던 개천을 불완전하게나마 되살린 것은 역도시화의 의미심장한 사례라는 것이다. 아쉬움과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청계천 복원은 산업국토에서 문화국토로 나아가는 ‘새로운 국토 연대기의 출발’로 평가할 만하다고 지은이는 본다.

 

청계천에서 시작된 여정은 공주 금강과 하회마을, 순천만과 거제 지심도, 남원 광한루와 양양 낙산사, 천안삼거리와 구례 섬진강 등 국토의 곳곳을 살뜰히도 더듬는다. 거룩한가 하면 안쓰럽고, 자랑스러운가 하면 속상하게도 만드는 국토. 그 국토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백두산과 지리산은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

“백두산은 ‘아버지 산’이고 지리산은 ‘어머니 산’이다. 국조(國祖)의 백두산이고 성모(聖母)의 지리산이다. 외우(外憂)의 백두산이고 내환(內患)의 지리산이다. 외우 속에서도 아버지 산이 늠름한 기상을 돋보이고 있다면 내환의 어머니 산은 빠듯한 살림을 갈무리해 놓는 데 지극정성이었다. 아버지의 시련이 굳센 것이라면 어머니의 수난은 모진 것이었다.”(1권 156~7쪽)


외우와 내환을 감당하느라 국토는 생채기를 입었고 백성의 삶은 고달팠다. 그것이 역사가 되어 흐르고 문화의 꽃으로 피어난 것은 아름다운 역설이었다. 백제와 신라 사이의 사활을 건 전투 현장이었던 옥천 구진벼루를 보며 지은이는 “국토의 비경이 역사의 절경을 생산한다”(2권 350쪽)는 통찰을 내놓는다. 영산강 유역 나주·무안·함평에서 “농악과 육자배기 토리의 민요기행, 서편제 판소리 기행, 염전 풍토사와 소금신앙 기행, 한-일 고분 비교문화기행, 청자 도자기 기행, 고려 사찰 결사운동 기행 등등 …”(2권 99쪽)의 가능성을 보는가 하면, 최제우의 <포덕문>을 실마리 삼아 덕유산 답파를 시도하는 것 역시 삶터이자 일터, 싸움터로서 국토를 재발견하자는 제언과 같다.


» 순천 선암사, 그리고 대청댐 공사로 수몰되기 전 1970년대의 문의마을 모습.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을 주제가 삼아 국토를 누비는 작가는 특히 ‘여행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힘주어 강조한다. 그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국토소설’이자 여행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주인공이 서울과 무진(순천), 대대포 등 세 개의 공간을 이동하면서 존재의 변화를 겪는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공간의 속박을 받는 인간으로 하여금 공간의 해방을 성취하도록 하는 사건을 통해 여행문학은 인간의 탐구정신과 해방성을 고양시킨다. 출세주의자의 서울은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는 욕망세상이고, 막막한 안개처럼 인습과 편견으로 뒤덮여 있는 무진은 속물들의 타락세상이다.”(2권 86쪽)

 

같은 맥락에서 지은이는 금강을 무대로 펼쳐진 신동엽·박용래·오장환·정지용의 대하 서정문학을 예찬하면서 “문인들부터 골방 벗어나 골목길이든 산골길이든 헤집고 다녀라”(2권 431쪽)고 권유한다.

 

길을 나선다고 미쁘고 아름다운 것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바른 눈과 제정신을 지닌 이에게는 차라리 고통스러운 체험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마을을 수호하는 숫미륵·암미륵 한 쌍의 부부 미륵바위 당산이 오리엔탈리즘적 남근석·여근석의 이색 경물로 둔갑”(2권 58쪽, 남해 가천마을)된 꼴을 보거나 “길이 길과 서로 생존경쟁을 벌이는 전투상황”(3권 425쪽)을 목격하게 되기도 한다. 관광의 이름으로 생태와 환경이 무자비하게 훼손되는 장소에 가면 “현장 직시의 아픔만 아니라 글쓰기의 고통”(2권 386쪽, 무주 설천)도 뒤따른다.

 

그렇지만 아프다고 신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남원 광한루의 우주공간 혼성모방 조경에서 역사와 과학이 어우러지는 미래형 연행예술을 꿈꾼다거나, 우륵의 전설이 어려 있는 탄금대에서 가야만이 아니라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두루 얽혀 있는 ‘역사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등 지은이의 시선은 어디까지나 희망과 가능성을 향해 있다. “고달픔을 노잣돈으로 삼는 국토기행, 슬픔을 주제로 하여 떠나는 국토기행이 어찌 없을 수 있을까.”(1권 19쪽) 그러나 “국토 언어는 기본적으로 희망의 언어이다. 사람들은 국토를 통해 끊임없이 낙토(樂土)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이 땅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해 내는 삶터의 현장들은 국토를 풍요롭게 하려는 풍경을 핍진하게 보여준다.”(1권 11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한길사 제공

■ 지은이와 함께


“서울에선 서울만 보여 떠나니 국토가 보이네”



» 지은이 박태순씨
청계천에서 백두산·지리산까지
작가 시선으로 누빈 국토 대장정
역사와 삶의 풍경들 3권에 담아

박태순씨(사진)가 길을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61년, 그의 나이 갓 스물이었을 때였다. 대학(서울대 영문과) 신입생으로 4·19 시위에 가담한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는데, 이듬해 목격한 5·16 군사반란은 젊은 영혼으로 하여금 기어이 길을 떠나도록 부추겼다. 그는 대학을 그만두려는 이유를 상세히 적은 장문의 편지를 부친에게 띄우고 ‘유랑’에 들어갔다.

 

“그때 황석영처럼 좀더 밑으로 내려갔어야 했어요. 황석영은 그 무렵 양양의 부두 시설 같은 데에서 뜨내기 노동자로 한 시절을 보냈죠. 그런 체험이 <삼포가는 길>이나 <객지> 같은 소설로 나타난 겁니다. 저는 유랑을 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도라지 위스키를 마시면서 습작에 몰두하곤 했죠. 치열하지 못했어요. 그게 문학적 차이를 낳은 것 같습니다.”

 

당시 그는 ‘언사록’이라 이름 붙인 국토편력 수첩을 지니고 다니며 온갖 것을 다 적었다. ‘국토는 자각되어야 한다’거나 ‘절망과 고통만 풍요한 세상’이라는 문구가 그 수첩을 장식했다. 1964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서 <무너진 극장> <정든 땅 언덕 위> <어느 사학도의 젊은 시절> 같은 소설을 내놓았지만, 그보다는 <작가기행> <국토와 민중> 같은 책과 연재물 ‘사상의 고향’ ‘신열하일기’의 여행문학 작가로서 성가를 높였다. 1987년 6월항쟁을 르포르타주처럼 그린 중편 <밤길의 사람들>(1988)을 끝으로 그는 소설을 내놓지 않았다. 1993년에는 아예 서울을 벗어나 수안보에 정착했다.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선 무렵이었는데, 민주화에 기여했던 우리 문학은 스스로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기분이었어요. 일상이니 욕망이니 하는 미시담론만 판을 치는 것을 보고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한국작가회의의 전신) 문예운동사를 정리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짐을 싸서 내려갔죠.”

수안보에서 그는 예정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예운동사’를 꼼꼼하게 정리했고, 이어서 신문 연재를 거쳐 세 권짜리 <나의 국토 나의 산하>를 완간했다.

 

“서울에 있었으면 아마도 이런 책 못 썼을 겁니다. 서울에서는 국토가 안 보이고 서울만 보여요. 서울이란 권력과 욕망과 광기의 덩어리입니다. 그 서울에서 벗어나니까 국토가 보이더군요.”

대작을 끝낸 작가는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소설을 향한 욕심을 털어놓았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일종의 하드웨어, 그러니까 기반시설을 깔아놓는 기분으로 썼습니다. 이 안에는 소설로 쓸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얼마든지 많아요. 역사적 소재를 다루되 현실에 대한 재해석이 되도록 하는 일종의 ‘팩션’을 쓸 겁니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있구요.”

 

<나의 국토 나의 산하>를 마무리하고 20여년 만에 소설가로 돌아올 그가 기다려진다. 최재봉 기자


기사등록 : 2008-07-11 오후 07:37:52 기사수정 : 2008-07-11 오후 07: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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