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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공존지수 / 2003년 씀

세상살이이야기

by 내일은비/신뽀리/가을비 2008. 7. 1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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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공존지수


비가 유난히 잦았던 올 한해가 어느듯 저물어 간다. 거리에 가로수 낙엽들이 휘날리고 먼 산에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들리고 스치는 바람이 싸늘히 느껴지면, 두어장 남은 달력에 괜스레 마음이 스산해지고 뒤돌아 항상 서툴게 살아왔다는 자괴감으로 늦가을의 정서를 펼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계절에 대한 서정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예민한 성격탓일까? 매일매일 뉴스로 접하는 세상살이는 더욱더 각박하고 가파르고 혼란스러우며 위태롭게만 전개되는 것 같고 우리는 너무 평안한 일상에서 추상적인 계절감으로 그런 세상을 잠시 잊고 지내는 것 아닌가 싶다.

회사업무를 하다보면 휘황찬란한 도심의 빌딩들이나 잘 정돈된 아파트 단지들이 아닌, 마치 시간의 시계를 거꾸로 거슬로 올라간 듯한 동네들을 항상 접하게 되어 당혹스럽다고 느끼게 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꾸불꾸불하고 좁은 긴 골목길과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지붕과 벽들, 보잘것 없는 세간살이에 의탁하고 있는 나이든 노친네들과 시골아이들보다 못한 몰골의 아이들...
그렇기 때문에 재개발 사업이 필요하다고 나라에서 그런 동네를 재개발 지역으로 묶어두고 개발을 추진하고 있겠지만 그나마 집주인이 아니고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라면, 사업이 진행되어 철거에 들어가는 때에는 또 어느 후미진 동네의 산아래 집을 찾아 옮겨갈까 걱정되는 세대들도 수두룩하다.

수도 서울의 공간적인 골목들은 개발과 투자로 거의 다 없어져 가고 있지만 그 속의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골목길은 더욱 외톨아지고 위태로와지고 가팔라지고 있는 것 아닐까. 그위에 덧씌워지는 올 여름 큰 태풍에 망가진 농어촌 사람들의 뿌리뽑힌 삶의 터전들...우리는 너무 공간적인 골목들만 없애면 다같이 잘 살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릴적 시골길은 길고 멀고 험했지만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거리고 저녁노을이 가로수에 아름답게 내려앉는 어머니 품속같은 길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생활터전을 옮기면서 보게된 도시의 골목길은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차 한대도 못다닐 정도로 좁았으며 항상 어둡고 불안한 골목길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평안한 일상을 지내는 우리들 도회의 사람들은 그 골목을 없애버리려 애썼으며 또 잊고 살아오는 듯이 보인다.

늦장가를 들어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막연한 동정과 감상으로만 느끼게 되었던 마음이 조금더 아이의 눈을 보며 절실해 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먼 중동의 전쟁으로 우리나라에서 수십년전에 벌어졌던 전쟁고아의 모습을 아침 신문에 보게되는 날은 마음이 편치가 않다. 우리의 무심한 마음과 우리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공간의 골목길만 없애려 달려왔던 우리의 뒤안길이 그 전쟁을 방치하고 전쟁고아들을 헐벗게 만들고 있는게 아닐까.

수년전 어려운 경제상황을 겪고 나서부터 우리의 이기심과 뻔뻔한 일상의 관념들은 더욱 굳어지게 되고 그 사각지대에서 버려진 사람들은 멀리는 중동, 아프리카에서부터 가까이는 내가 다니는 전철역의 노숙자까지 더욱더 우리의 양심에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몇년전 푸른 나이로 작은형의 갑작스런 부음을 받았다. 그것도 10월 마지막 계절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대학병원에서 형의 차디찬 몸뚱아리를 부검하고 허름한 화장터에서 한줌 가루로 변해가는 형의 존재를 보면서 내가 받은 충격은 그때까지의 그 어떤 고통보다도 컸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일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대하는 팔레스타인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 그 나라의 사람들은 그 어떤 고통을 견디는 힘이 특별히 있는 것일까? 우리가 칭송해 마지 않았던 콜롬부스의 서인도제도 발견이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던 인디언에게는 고통과 착취와 종족멸절의 순간이었음을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로마제국의 영웅들이 칭송받는 순간에 그 제국을 떠받들던 수많은 노예들의 아픔은 그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로마도 결국은 망하고 말았지 않은가?

회사 게시판에서 공존지수를 높이자는 글을 본적이 있다. 쉬운것 같으면서도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일상에서 우리들의 미래의 평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몇가지만 본데로 적어보면....지금 힘없는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지말라 / 수입의 1퍼센트는 기부하라 / 수위아저씨 청소아줌마에게 잘하라 / 옛친구들을 챙겨라....
IQ, EQ가 아닌 NQ(NETWORK QUOTIENT, 공존지수)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은하의 우주에 한줌 먼지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혼자만의 바벨탑을 쌓는다고 행복해질까..이제는 우리들의 공존지수를 높이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함께 아름다운 골목길을 만들어서 우리들의 아이들이 중동이건 극동이건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으로 뛰어놀수 있게 우리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하나라도 베풀고 도와가며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모든것을 버림으로써 새봄에 더욱 새롭게 커 나가는 저 늦가을의 나무들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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