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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작은형의 장례를 치르고 쓴 글

나에게로쓰는글

by 내일은비/신뽀리/가을비 2008. 7. 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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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00.11.04 (Sat) 16:47:00
[부음] 작은형의 죽음....


어디서 부터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되다니...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보지만
가을하늘은 속절없이 깊어만 가는군요.

가슴속 엉울진 회환을 이렇게 풀어놓치 않으면 더욱 더
갈기갈기 찢겨진 상처를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고향 가을산의 단풍은 어느 해보다도 붉게 물들고 읍내 거리의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샛노랗게 떨어지던 날 가을비 속으로 38 젊은 나이의 작은형은

그렇게 화장터의 한줌 유골로만 남고 검은 연기되어 하늘로 사라져 갔습니다.

월요일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포항사는 큰형님의 전화에 뭐라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향 읍내에 사는 작은형이...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일주일전 어머니 환갑때 모두모여 같이 저녁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다음날 들판에 경운기 몰고가서 짚단도 날라주던 그 형이...
그 다음주에 고향집 와서 양파 심을 거름을 밭에 실어 내주러 오겠다며

어머니가 싸주시는 반찬거리 들고 골목길로 여윈 어깨 숙이며 갔던 형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었다니...

두어해 전 할머니 부음이나, 평생을 홀로 사시다가 가셨던 작은아버지 부음때보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가슴속 절망과 슬픔과 왜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생겨야 하는지

대상없는 분노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그길로 고향길로 달려갔습니다. 아직 어린 제 아기는 처와 함께 처갓집에 보내놓고...
어떻게 고향으로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전화를 드리니까 어머니는 거의 넋을 잃고 작은형이 병원에서 그냥 아프기만 한데

뭐하러 오느냐고 울먹이셔서 더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고향집에는 동네 분들에게 둘러쌓여 가뜩이나 여위고 검은 어머니의 조그만 몸집이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엄마가 더 걱정이야.." 어머니는 재작년 심장수술 받은 가슴을 쥐어 뜯으시며 깊은 한숨만 쉬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실 뿐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두고 다시 읍내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에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읍내 병원 영안실에는 고향사람들이 문앞에 서성이들 계셨고 안으로 들어서니 아직 영정사진도 준비되지 못한 초라한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강단이 있으신 아버지는 슬픔을 속으로만 삭이시며 오히려 저희들을 위로하려

하시고...저와 큰형 막내등 다른 가족들은 망연자실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머리는 좋았지만 공부보다는 다른쪽에 더 관심있어 하던 형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타를 손에 잡더니
결국 다니던 대학 영미학과도 중도에 그만두고 밴드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대학교 시절도 학내 그룹사운드를 조직하기도 했고 아르바이트로 밤무대 백밴드를 하기도 했는데 결국 학업보다는 음악이 더 좋았나 봅니다.
밤부대 생활이라는 게 온갖 인간군상들의 행패에 시달리고 그 바닥 사람들이라는게 제대로 선량한 사람들이 없듯이 형도 겉으로는 그렇게 물들어 가는 듯 보였지만...기본적으로 악하지도 모질지도 못한 형은 음악외에는 다 힘들어 했었습니다.

더구나 부모님에게는 더 면목없어 했죠...


그런데로 생활을 했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손님하고 싸우기도 하더니 큰 도시는 인간들이 보기 싫다며 고향 근처 시내로

옮겨왔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대학다니는 형과 같이 자취하면서 공부하는데 옆에서

기타 둥당거린다고 제가 신경질께나 부렸었는데 돌아보니 속좁고 옹졸한 제가 너무나

후회스러울 뿐입니다.
세상에 대한 풀수 없는 상처들을 형은 그렇게 음악에 쏟아넣고 있었지만...

음악만으로는 돈벌이가 되지를 못했나 봅니다. 그래도 형에게 �퍼플이며 레드제플린이며...하는 락스타들을 알게 되었었는데...

시내에서 다시 근처 읍내로 옮겨 와서 결혼도 하고 조카두 생기고 다소 안정된 모습을

보였는데...노래방이며 전자음반기기들이 나오면서 형같은 직접 반주하는 밴드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 들었나 봅니다. 그때부터 형의 술자리가 잦아지고...아마 생활도 많이 흔들렸었나 봅니다.

가정은 이루었지만 안정된 돈벌이 기반이 없으니...이일 저일 해봐도 신통치도 않고...다른 가족들이나 처가 보기에도 미안하고...조카는 나날이 자라고...

그러다가 작년 봄 작은형수가 가출을 해 버렸습니다. 깊은 내막은 모르겠지만...

생활고가 문제였겠죠...더구나 1500만원이나 주고 들어간 전세집에 이미 다른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되어 전세금 한푼 건질수 없게 된게 영향이

컸었습니다. 작은형수는 소식도 없고...조카는 고향집에서 부모님이 키우게 되고

읍내에 혼자 남겨진 형은 결국 음악하던일을 집어던지고 노가다며 닥치는데로 일거리를

찾아 다녔나 봅니다. 공공근로를 하다가 숲가꾸기 사업이라는 산림조합 일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일에 재미를 붙여 나갔지만 힘든 일과 나이든 사람들과의 갈등...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후회등이 어우러져 나날이 술로 학대하는 날이 많았나봅니다...혼자 지내다보니 먹을거리도 제대로 챙겨 먹었을리도 없고.,,

가족들은 형이 힘들어하고 술도 많이 마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달리 어떻게 해 줄수가 없었습니다.
작은형수네 연락을 해도 기별도 없고,..그나마 형이 그일에 열심인 것에 위안을 하며 몸조심하라는 당부말고는 자주 볼수도 없었고,,혼자 얼마나 망가져 갔는지도 몰랐죠...

어머니 회갑날에도 그 일은 힘들어서 조만간 정리하고 고향에 들어와서 골짜기에 나무나

심고 농사일을 해볼까 하는 이야기를 하더니 읍내에 가서 마지막 주동안에 준비를 하고 있었나봅니다. 며칠 산림조합에도 안나왔다고 하더군요...

이제사 알게 된 것이지만 이미 간이나 위가 많이 망가져 있어서 그동안 병원에 입원도

하고 계속 약도 먹고 있었다는군요. 그 주말에 형은 그동안 전화 안하던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다 하고는 고향집에는 다리가 삐어서 못간다는 말만 남겨놓고,,,

혼자 각혈을 하다가...자정넘은 시각에 더 견디지 못하고 병원으로 혼자 걸어가다가 길가에 쓰러져서 그렇게 처절한 숨을 거두어 버렸습니다...지나가던 고등학생이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겼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죠...

혹시나 누구에게 해를 입어서 그랬는지 해서 아버님이 부검을 의뢰해서 경북대병원으로

가서 부검도 했지만 별다른 외상이 없고...위와 식도연결부위가 파열되고...넘어져서

뇌출혈로....사망했다더군요...
너무나 마르고 차가운 형의 시신을 부검대위에 올려놓고 기다리던 시간은 다시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금새라도 살아서 벌떡 일어나서.....왔냐?...인사할 것만 같은데...
부검하는 전기톱소리에 큰형은 아예 병원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부검이 끝나고 다시 대충 봉합한 형의 시신을 보니 괜히 부검까지 해서 두번 죽이는 일은 아닌지 후회스럽기 조차 하더군요...

무덤을 쓸까하다가 남은 부모님이 무덤만 보면 더욱 상심이 커실까봐서 화장하기로 의견을 모으고...처음에는 재를 고향밭가에 뿌릴려고 하다가 형 친구분들이 나중에 조카가 크면 무덤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말려서 일단 납골당에 안치하기로 했습니다...

화장터에서 큰형이랑 다른 가족들은 납골당으로 떠나고...나와 막내동생은 형의 유품을 정리하러 다시 읍내로 돌아왔습니다...상중 내내 누구보다도 비통해하던 여동생의 통곡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도는군요...

쓸쓸한 주인잃은 이층 전세방은 너무도 처참했습니다. 화장실도 방에도 각혈한 피를 치우다가 만 흔적이 남아있고,,,,무엇보다 부엌가득한 빈 소주병...냉장고에 남아있는 반찬거리...한방가득 쌓아놓은 음악테잎과 음반들...여기저기 걸려있는 옷가지들과...산림작업하던 작업복,,,운동화...잔고없는 통장들,,,빛바랜 사진들...

그리고 조카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절규의 낙서들... 그날따라 가을비는 더욱 빗발이 굵어지고,,,

노동일에 일정한 직업도 없어서 변변한 보험하나 들어놓은 것도 없고...

달랑 국민연금 몇번 넣다가 납부예외자로 남겨둔 것에서 조카에게 유족연금이 조금 나오는게 형의 유산의 전부였습니다...아니 시내에서 밴드생활 할때 한때 많이 벌때 사놓았던 고향집 뒤의 얼마안되는 밭이랑....

가뜩이나 심약한 어머니와 아직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조카가 무엇보다도 걱정입니다. 남은 형제들이 끝까지 잘 보살펴야 겠지만...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더군요...그렇게 남겨두고 서울로 다시 돌아오려고 하니....마음만 더욱 무거워질 뿐이더군요...

더 슬픈 것은 고향에서 술로만 살다가 먼저 떠난 형의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결국 형도 그 뒤를 따라간 것과... 형의 발인날 외갓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그리고 형의 3.5제날이 형의 생일이었다는 것...

아직도 그렇게 세상에 열심히 살려고 한 사람을 빨리 데려간 하늘의 일이...너무도 원통스럽고...그렇게 혼자 비참하게 외롭고 슬프게 생을 마쳐야 하는지...살아간다는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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