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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로 가자...

나에게로쓰는글

by 내일은비/신뽀리/가을비 2008. 7. 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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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 간다. 깊은 터널 속 어두움도 짙어 간다. 길거리에 잠을 자는
버려진 삶들이 어둠속에 부스러진다. 거리에 부도난 수표같은 계절지난
갈잎이 휘날리고 눈물젖은 눈동자에 엄마잃은 아이는 창가에 불을 밝혀
둔다. 그렇게 겨울이 깊어 가고 있다. 어디서 돈세는 소리속에 메마른
웃음소리 들리고 지친 걸음들이 다시 어둠으로 간다.

1. 동해바다로 가자.

바다를 그리워 한다. 바다는 잿빛 짙은 도시의 막막한 삶들 한가운데로
소용돌이 치며 흰 거품을 토해내며 뒤척인다. '바다가 보고 싶어, 속초
바다가' 그렇게 산발한 머리에 꺼칠해진 수염으로 촛점없는 시선을
허공에 보태던 시립병원 낡은 벤치에서 한때는 잘나가던 청춘 우상이던
한 영화배우가 토해내듯 그리워 하던 바다. 그는 바다를 보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고 몇줌 가루로 변해 뿌려지고 말았다. 잊혀진 것들은 다
불태워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여기 야수들이 울부짖는 잔혹한 생의
아귀다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바다를 그리워 한다. 그 넉넉한
품 아득한 꿈같은 수평선 저승으로 가는 극락조 같은 갈매기 떼 ...

기차는 어두운 지하 신문지를 덮어 쓴 사람들 위로 찬 바람을 날리며
플랫트홈을 떠난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청량리 역사를 588 몸파는
아가씨들의 붉은 한숨같은 기적소리를 토해내며 기차가 떠난다.
객석의 소란스러움도 잠시 깊은 겨울밤에 빨려 들어가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다. 꿈을 꾸고 있다. 고래의 꿈, 나비의 꿈.
설국의 꿈...속을 달린다. 나신을 드러낸 겨울나무 숲속을 달려가고
늙은 농부의 갈라진 손등같은 들판을 달려가고 서리가 내려 앉는 산사의
일주문앞을 달려간다.

정동진 역...밤새워 달려온 기차가 숨가쁜 입김을 허공에 하얗게 뿌리며
발을 멈춘다. 짙은 어둠속 붉은 가로등아래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악착스레 달라붙는 잠들을 꿈들을 떨쳐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파도소리 아스라히 들리는 어둠의 바다를 내려본다.
누구는 벌써 모래사장에 내려서 바다 가까이 선다.
피난선을 기다리던 어느 겨울 원산 앞바다 흥남앞바다 피난민들처럼
그들은 태양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가 먼저 잠을 깬다. 뭍으로 뭍으로 달려오는 흰 파도와
포말로 부서지며 아우성치는 소리에 몸을 움추린 사람들이 차가워진
손을 잡는다.
검은 바다 짙은 잿빛 구름사이로 햇살이 먼저 가르며 솟구쳐 오른다.
사람들 저마다의
입에서 탄성이 나온다. 아. 모든 어둠을 빨아들일 듯 붉게 용솟음치며
태양이 수평선위로 떠 오른다. 모두의 얼굴에 붉은 햇살이 가득 비친다.
바다와 태양과 하늘과 사람들과 기차와 모두가 붉은 빛 속에 하나되어
불타오르며 그렇게 새벽이 온다.

그대 좌절과 분노와 회한의 눈물 씻고 이제 바다로 가자. 동해바다로...

2. 서해바다로 가자.

장항선 열차라도 좋다. 청춘의 액셀레이터를 마음껏 밟으며
RPM을 무한대로 올려라. 국도의 끝에 푸른 소나무 숲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삶이란 때로 흔들리고 겨울벌판에 홀로서서
찬 바람을 맞으며 지쳐가는 것. 그러나 그 속에 또한 푸른 봄꽃의
꿈을 꾸는 것.

바다가 갈라진다는 무창포 앞 바다에 섰다. 지난 여름 사람들이
짓밟고 간 흔적들이 뱃사장에 가득하지만 눈을 땅에서 하늘로 돌리자.
그대 지친 어깨로 낙조의 부드러운 손길이 어루만져 줄테니. 아쉬움에
피터지는 가슴으로 갈매기떼 낡은 고기잡이 배 주위를 맴돈다.

비릿한 냄새가 인간의 냄새보다 향그럽다. 지는 해는 바다로 지지만
인간의 삶 너머로 진다. 인적도 드문 서해안 바닷가에는 언제나
외로워서 더욱 그리워 지는 그대와 나의 서글픈 존재가 느껴진다.

플라스틱 잔에 소주를 가득 채우고 모래사장 어디에건 주저앉아
불을 피우며 조개구이 몇 개에 취기가 오르고 세월이란 저 지는 해처럼
덧없는 것을 악착스레 앞으로만 달려왔단 말인가. 이제 뒤돌아서면
빈 겨울벌판에 몰아치는 눈보라 뿐. 빈 손에 부스러지는 모래처럼
빈 가슴에 가득 다시 부어지는 맑은 소주와 맑은 그대의 눈물.
그 위에 아롱지는 지는 햇살 몇 개 빛나리.

먼저 가슴을 열지 않으면 누구도 그대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것을...

우리 이제 바다로 가자. 가슴에 아무것도 담아두지 말고 빈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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