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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의 비망록 - 마음에 푸른 빗줄기 흐르던 날

하이텔시절 글모음

by 내일은비/신뽀리/가을비 2008. 7. 1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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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때 쓴 글입니다.

 

이말을 하고 싶다. 사랑이란 언제나 가슴에 머무를 때는 힘들고
괴로워 하다가 떠난 다음에는 얼마나 그리워하구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인지...
사랑이란 이름아래 남겨지는 고통들은 또 얼마나 오랜동안 상처를 남기고
남은 날들을 흔들리게 하는지...
누구는 그랬지. 사랑이란 것은 단지 리비도의 관념적 표현일 따름이며 결혼
이란 섹스의 사회적 公認일 따름이라고.

→→→→ 내 마음에 푸른 빗줄기 흐르던 날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여름비 같지 않게 내리던 날이면,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않고 눈만 뜬 채로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만 바라보며 그렇게 맞이했다.
온종일 비맞고 다니면서도 물장난에 시간가는줄 몰랐던 시절,
다음날 온몸이 펄펄 열병처럼 끓어올라도 다시 그 빗줄기속으로 달려가고
싶던 시절... 그 아침처럼 이마가 끓고 있었다. 손바닥을 대어보니 뜨거운 열기
가 가득 느껴졌다. 아득히 바닥으로 꺼질듯 몸이 무겁지만 마음은 가벼이 허공
을 날랐다. 습관처럼 머리맡의 책상 서랍을 열고 약봉지에서 흰색 알약을 꺼내
어 들고 일어나 앉았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약기운이 금새 온몸을 나른히 잠재
웠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비소리는 여전히 세상에 가득
했다.
입술이 까칠하게 말랐다. 다시 일어나 물마시기도 귀찮다. 천정이 빙 돈다.
빈 속에 약기운이 퍼지니 그런가보다. 웬일인지 눈물 한방울이 귓가를 타고
흘러 배게에 떨어졌다. 울다니...때로 아무런 이유없이 슬픔은 그렇게 솟나
보다. 헤어진 오랜 사랑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단 말인가.

그것이 사랑이었던가. 정에 외로움에 기대어 달래던 내 어두움이었던가.
만남이 길어지면 정이 깊어지고 정이 깊어지면 사랑이 솟아나고 사랑이
오래가면 다시 괴로워지는 것을...다시 혼자로 남고 싶어지는 슬픈 욕망이지.
겁나기두하고지겹기도하고이젠...누굴만나서정이드는거.누군가나를생각해
주고나를기억해주고나를끊임없이좋아해주는것...
그 사랑 다시 생각하면 괴로움뿐이다. 그 헤어진 후의 고통의 날들을 기억한다.
얼마나 오래 살아남아 가슴을 짓누르던가. 흐트러지던 나날들...

후...한숨을 허공에다 뱉아보았다.

기억한다. 그 여름 입사후 첫휴가 직전 헤어지고 휴가내내 꼼짝않고 고향에도
안내려가고 절절끓는 방에서 내 가슴도 절절끓어 녹아 내렸던 것을.

무기력과 권태로움이 나를 감쌌다. 어디에서 나를 찾을 것인가. 언제나 메마름
에 잠오지 않는 밤이면 슬며시 솟아드는 욕망. 그 욕망의 끝에 허전히 찾아드는
존재의 자학.

갑자기 이유없이 사람이 미워지고 싫어지고 욕이 나오고 그로다가 그런 내
마음에 슬퍼진다.

그래도 허전해도 슬퍼도 외로워도
33이란 나이가 버거워도
33이란 나이에 심사는 철없어도
사는데로 살아가야지.

헐떡이며 괭이질을 하던 어느해 봄처럼
쓸데없는 호기라도 부려보던 술취한 어느 밤처럼

올거야 언젠가는
긴머리 나풀거리며
머릿결에 흰 끈 동여매고
밝은 웃음 지으며
흰 블라우스에
초록치마 나풀거리며
내 이름 불러줄거야.

어제 세차게 내린 비 다음에
하늘에 구름 가득하고
날씨는 맑건만...
괜스레 기분이 가라앉아서 주절거려 본다.

오랫만에 고향집에 전화했더니
비가 오락가락한다고 아버지두 집에 계시네.
어머니는 마실나가고 안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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