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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 시절 어느분이 보낸 편지 둘

하이텔시절 글모음

by 내일은비/신뽀리/가을비 2008. 7. 1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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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태양은 가득히... 형태:TXT 크기: 2K 0/ 0
보낸이:손** (********) 98/07/06 23:21 종류: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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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님의 글을 읽었을때.. 어쩌면 이렇게 조용하고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하는 글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일기를 쓰는 듯한 솔직함이 놀랍기도했지요.
3번쯤 읽었을때 왜 제가 **님의 글에 끌렸는지 알게됐어요.
그건.. 언젠가 제가 읽어본 글들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신혼 초 어느땐가 발견했었죠.. 남편이 거의 10여년간 모아두었던 다이어리들..
집을 떠나 유학생활을 하며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남자들의 생활은 모두 그렇게
비슷한 것들인가봐요.
무기력함..나른한 권태감.. 그리고 앞날에 대한 막막함..

저는 결혼한 지 *년쯤 된 주부랍니다.
**님을 보면 제 남편의 총각시절이 그대로 투영되어 보이는 것같아요.
남편은 흔히 말하는 **대 법대를 나와 오랫동안 고시공부를 하고 - 거의 고등
실업자 생활이죠, 아마 - 지금은 안정된 일을 하고있는 평범한 사람이예요.
좋게 말하면 욕심이 없고 다르게 말하면 야심이 없는 유순하고 성실한 사람...
그렇지만 대부분의 착한 사람들이 그렇듯 자기가 만든 방안에서 잘 나오려고
하지않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못해서 저랑 만나기 직전엔 차라리 혼자 살아야지...
그게 내 운명인지도 모르지.. 라고 생각했다는군요. **님처럼.
그의 삶에 대한 철학은 그랬대요.
똑똑한 아내와 몸담을 조그만 집과 쓰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고정된 수입을
가지고 늘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살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느냐고...

어느날 우연히 보게된 선에서 한 여자를 만나 일주일 만에 결혼 약속을 하고
남들이 다 미인이라고 말하는 그녀와 결혼하게 되어 그는 무척 행복해했대요.

지금도 여전히 행복할까요?

예쁜 아내가 깔끔하고 화사하게 꾸며놓은 집에서 귀여운 딸아이의 재롱을 보며
빨래니 요리니 하는 것들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생활이지만
그는 더 이상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결혼으로 인해 자유와 감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그에게는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씻지도 않은 채 조그만 방안 가득 LP판이며
책들을 늘어놓고 밤 늦게까지 뒹구는 생활이 더 어울려 보여요.
실제의 아내보다는 잡지나 인터넷에 나오는 환상속 여자들과의 섹스가
더 황홀할지도 모르죠.
대충 만들어 먹던 요리같지 않은 요리가 허기졌던 그 시절에는 모두 맛있었는데
이젠 무얼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 없답니다.
그의 아내는... 그보다 조금 더 불행하지요.
남편같은 사람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죽도록
권태롭게 만들거든요...

**님은 누군가를 갈망하면서도 결코 적극적으로 나서는 법이 없고..
체념에 가까운 상태라지만 실은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기를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충분히 즐기라는 거예요.
만족스러운 상대와 결혼을 해도 **님의 외로움은 덜어지지 않아요.
다만 외로운 사람이 둘로 늘어날 뿐...

좋은 책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음악에 심취하고 혼자 등산도 다녀보세요.
결혼하고 나면 왠지 잘 안되는 것들이랍니다.
**님의 쓸쓸함이 조금 덜어지기를 바라며 **에서 글을 보냅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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